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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view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리뷰 정지훈 강소라

by MC_W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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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Race to Freedom: Um Bok Dong

개봉일: 2019.02.27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6분

감독: 김유성

출연배우: 비, 강소라, 이범수, 고창석, 김희원, 민효린, 이시언, 박진주, 정석원, 최대철, 신수항, 이경영, 박근형, 왁스 등등


출처: 다음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줄거리


일제강점기, 일본에서는 조선의 민족 의심을 꺾고 그들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 조선 자전차 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엄복동의 등장으로 일본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계속된 무패행진으로 "민족 영웅"으로 떠오른 그의 존재에 조선 전역은 들끓기 시작한다. 

 

때맞춰 애국단의 활약까지 거세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엄복동의 우승을 막고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최후의 자전차 대회를 개최하는데.. 일제강점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한일전이 시작된다.


"엄복동"을 아시나요? 그는 실제 인물이며,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자전거 선수다. 1913년 4월 전 조선 자전차 경기대회로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사가 서울 용산 연병장에서 개최한 이 대회는 서울, 인천, 평양의 3곳에서 벌어진 전국 규모의 대회로, 당시로선 경이적인 규모인 10만 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한다. 

 

"엄복동"은 도둑? 그는 1910년 자전거 경기에서 우승한 후 1913년 전 조선 자전차 경기대회 우승으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그렇게 1925년도까지 여러 대회를 우승하던 엄복동은 1926년 자전거 절도 장물 사보 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벌금 50원 판결을 받는다. 그 후 "1949년 대한 자전거 경기연맹 주최 자전차 급 종별 경기대회 노장 3천 미터에서 1위"를 하고, 또다시 1950년도에 자전거 절도로 체포 후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된다. 

 

벌어놓은 돈을 모두 탕진하고 집도 없던 엄복동은 동두천시와 의정부시 일대를 떠돌다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행방불명된다. 양주군 이 담면(지금은 동두천)의 야산에서 폭격에 맞아 사망했단 설이 가장 유력한데, 그의 증손자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을 먼저 피난시키고 홀로 피난길에 올랐다가 동두천의 한 언덕에서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출처: 다음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2017년에 제작되었지만 2019년에 개봉한 전형적인 창고 영화다. 평단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한 영화지만, 다른 뜻으로 유명해진 영화다. 

 

일단 시사회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영화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시사회 상영분이 "최종 편집본이 아니다"란 말까지 나오며, 개봉 이틀 전 CG 편집 작업이 완성되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영화는 모든 부분에서 관객과 평단들에게 혹평을 받았는데, 옛날 어린이 위인전 수준의 유치한 이야기에 개연성은 없고, 진부한 클리셰 범벅에 연출은 엉망이며 독립운동과 자전거 경기 두 개 영화의 내용을 억지로 버무린 느낌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감정선도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장면조차도 잘 살려내지 못했는데, 박진감이 없다. 150억 원이란 대한민국 블록버스터급의 제작비가 들었음에도, CG 연출이 저예산 영화들보다 못한 것도 악평 감이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매" CG의 종잇장 같은 조악한 모습은 시청자를 경악시켰고, 대부분의 배경들도 CG처리를 했음에도 해상도가 낮고 인물과의 합성이 엉망이다.


출처: 다음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복동의 이야기에 반일 소재까지 더했는데, 시대 배경상 반일 소재로 제작하는 게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반일, 액션, 신파, 코미디, 로맨스 등 여러 요소들이 개연성 없이 다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버무렸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3.1 운동 100주년을 노렸는지, 2019년 2월 말에 개봉했지만, 같은 날 개봉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쪽이 3.1 운동에 대한 상징성이 크고 평점도 상대적으로 높았기에 타이밍을 잘못 맞춘듯한데, 결국 3.1절 당시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관객수 262,504명을 확보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은 35,352명으로 전날 대비 59.8% 증가했고, 그다음 날은 토요일임에도 2만 명대로 떨어진다. 

 

3월 14일 지방 중소 극장 몇 군데를 빼고 전부 스크린에서 내렸고, 3월 20일 마지막 날 일일 관객수 75명을 기록하며 전국 모든 스크린에서 내려갔다. 그 후 영화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최종 누적 관객수는 172,212명을 기록했고, 150억이란 국내 영화임에도 큰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한국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 투자 대비 흥행권이 바닥권에 해당한 실패작으로 전락했다.


출처: 다음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실제 인물 엄복동이 일본인 선수를 이겼기에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란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복동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고는 볼 수 없으며, 엄복동은 자신의 손에 무기를 들고 일제에 저항하거나, 민중을 상대로 계몽 운동을 펼쳤다던가, 독립조직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직간접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한 전적이 전혀 없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개봉을 앞두고 실존 인물 엄복동이 자전거 수십대를 훔쳐서 팔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절도 및 밀수 범죄자란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 휩싸였는데, GTA 경성이란 드립도 있었다.


출처: 다음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엄복동이 훔친 자전거의 가치는? 1950년 훔치려고 했던 자전거는 가액이 3만 원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1950년 4월 기사를 보면 당시 쌀 가격은 8kg에 2300원이었다. 엄복동이 훔친 자전거는 쌀 한 가마니보다 비싼 가격이었고, 당시 공무원 월급이 9300원에 비교하면 3배 이상이다. 1950년 4월에 조사한 서울의 5인 가구 1개월 생활비가 약 4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현대 기준으론 300 - 4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훔쳤던 거다.

 

그리고 <자전차왕 엄복동>의 메가폰을 잡은 김유성 감독이 한 번 하차했던 영화인데, 김유성 감독은 연출권 침해를 주장했고, 영화 투자사 셀트리온으로부터 영화 촬영 과정에서 여러 간섭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스토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스포를 해도 그 내용이 정말 스포한 내용인지 알수 없는 영화라 한다. 


이상으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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