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일: 2002.06.28
재개봉일: 2015.02.05
러닝타임: 126분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목소리 출연배우: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나츠키 마리, 나이토 타카시, 사와구치 야스고, 가미로 츠네히코 등등
줄거리
이사 가던 날, 수상한 터널을 지나자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오게 된 치히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린다. 겁에 질린 치히로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 그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은 치히로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사상 초유의 미션을 시작하는데..
애니메이션 최초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공상을 수상, 아카데미 영화제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품이다. 그때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모노노케 히메>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콘도 요시후미 사망으로 제작사를 이끌 감독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다시 복귀했고, 자신이 직접 각본 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였다. 이번 작품은 그가 <모노노케 히메>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느낌에서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며, 이번 작품에서도 자연파괴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치히로 가족은 부모님과 살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러던 중 길을 잘못 들어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터널 앞에 도착하고, 터널을 지나자 알 수 없는 느낌을 주는 폐허가 된 놀이 공원을 발견한다. 치히로는 떠나자고 부모님을 재촉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뭔가에 홀린 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맛있는 냄새에 홀려 한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다.
치히로는 혼자 돌아가겠다고 나서지만 한 수수께끼 소년 하쿠와 만나게 되고, 해자 지기 전에 돌아가라 한다. 하지만 이미 해는 져가고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나타난다. 두려웠던 치히로는 부모님에게 돌아갔지만 아빠 엄마는 돼지로 변해버렸고, 겁에 질린 치히로는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간다. 돌아가는 길은 물이 차올라 잠겨 있었고, 물이 차오른 곳의 건너편은 인간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었다. 하쿠의 도움을 받아 치히로는 온천장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는 이곳은 여러 정령들과 신들이 모여드는 온천이 있는 곳은 유바바 마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이다. 이쪽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 일을 해야 한다. 치히로는 하쿠의 도움을 받아 유바바의 온천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치히로라는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고 센 이란 이름을 갖고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짓기 위해 가장 명확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빼앗아 자존감과 인간성을 상실을 의미한다. 작중 하쿠는 치히로에게 네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 그러면 돌아가는 길을 잊고 말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쿠 역시 자신의 이름을 잊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며, 마녀 유바바에게 얽매여 있었다. 이렇듯 이름을 잃고 자존감을 잃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치히로가 알 수 없는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철없고, 불만 가득했던 치히로가 센으로 거듭나며, 센으로 살아가며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 가득한 아이로,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되면서 불만 가득했고 도망치고 싶어 하던 아이에서 소녀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서 해결해야 했고, 혼자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쿠라는 친구가 있어줬기에 감정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상당히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비유 루머 중 이 작품의 등장무대와 배경이 매춘에 관해 비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 영화 평론가 마치야마 토모히로가 2004년 블로그에 작성한 글이 있다. 잠시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런 관점으로 보는 이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보길 바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센은 유나(탕녀)로 일하게 되는데, 일본 사전의 정의로는 온천에서 일하는 여성이나 대중목욕탕의 창녀로 해석된다. 예로부터 풍속에서 초경 이전의 소녀는 수습으로 허드렛일을 하는 치히로가 그 단계다. 그리고 일본 신주쿠 지역에 홍등가가 있었고, 성에 개방적이었다. 유럽인에 의해 성도덕을 강요당하기 전에 일본은 정조 관념이 없었고, 그것을 부활시키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세상을 그리고자 했다면 그것은 풍속산업(유흥업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풍속 산업 같은 세계가 돼버리지 않았냐. 지금 일본 여성들은 매춘굴에 어울리는 사람이 매우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를 모두 양복을 입고 잇는 모습이 개구리 같다.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개구리 남자와 민달팽이 여자 국가이다.라고 그의 블로그에 적었다. 너무 길어서 줄임.
풍속의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부모님 빛을 대신 갚기 위해 뛰어든 어린 여자아이 이야기라고 볼 수 있고, 목욕탕 여자 종업원이 종종 매춘을 하던 과거 일본의 모습일 수도 있다. 본명을 쓰지 않고 가명을 쓰던 과거 일본의 매춘부들의 관행이기도 했고, 본명을 잊으면 나갈 수 없다는 대사도 이전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현재의 생활에 젖어버리면 빠져나갈 수 없다고 암시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오나시가 신에게만 많은 금을 주며 큰 호의를 보인다. 아무도 가오나시를 들이지 않았지만, 센 만이 그를 들여줬고, 그렇기에 처음으로 받은 호의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후 가오나시가 금과 약패 같은 재물인데, 그것은 매춘 사회에서 대부분 순결한 여성에게 값을 더 치러주듯이 가오나시의 호의가 치히로의 처녀성을 원한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2002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씨네 21 인터뷰는 전혀 다른 논지의 내용을 볼 수 있다. 10살 된 친구 딸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를 구상하면서 생각하기가 귀찮아 온천장을 지브리 스튜디오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센과 같은 10살짜리 어린아이가 가정을 떠나 다른 사람이 주는 밥을 먹고, 그러면서 느낀 점들을 그린 영화다.
자연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생존의 수단이며 재해와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은 문명을 버리고 살 수 없고, 문명은 자연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연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 가오나시가 금을 만들어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건 10살짜리 어린아이가 선물 사서 남의 관심을 사려는 것과 비슷하다. 어린이는 여러 체험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 과정이 지나지 않으면 그다음은 오지 않는다. 그걸 표현하고자 했다.
가오나시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일본의 심각한 불황과 연관이 깊고, 지금 일본에서는 강하지 않으면 험난한 시대에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일본 영화의 주인공도 주로 강한 인물이다. 그런 흐름에서 영화 최대 특징은 가오나시로 드러나는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럼 점이 일본인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주는 교훈은 문명의 발달과 자연의 파과,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성이 퇴색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매춘을 비유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나 영화 내용을 보면 매춘은 작품과 전혀 상관없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이제 18년이 되었지만, 다시 봐도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었다.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험, 그리고 순수한 사랑과 성장하는 과정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던 아름다운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은 다시 들어도 아름답고, 영화의 한 부분을 책임지지 않았나 싶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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